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결로 압축된 이번 선거는 여론조사로만 보면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승부다. 주요 언론에서 발표하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지지율 격차는 10%P 가까이 벌어졌고, 현재까지는 트럼프 측이 이를 뒤집을 만한 '놀라운 카드'는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승리를 거둔 지난 대선과 크게 달리지지 않은 선거 전략에만 몰두하고 있다.
'강력한 미국의 재건과 이를 뒷받침하는 강인한 지도자'
그는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의 국제역학지도를 송두리째 바꿨다. 다자주의에 입각했던 국제외교관계를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고립주의로 전환했고,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외쳤던 과거 대신 일자리와 무역흑자를 위한 보호무역 강조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이같은 성과를 강조했고, 지금 유세 현장에서도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해내지 못했던 일들을 달성했다'는 자화자찬은 고정 레퍼토리가 됐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화두는 '경제 성적표'가 아니라 코로나19 대응과 인종차별 논란으로 옮겨지면서 이같은 선전이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코로나19 초기 대응 논란…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 또는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20만명이 넘게 사망한 이 엄청난 팬더믹 사태의 책임이 중국에게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프레이밍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틈만 나면 백신개발이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고, 엄청난 양의 방역물품을 보급하는 등 모범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2개의 악재는 이같은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기자가 출간한 '격노'가 첫번째다. 우드워드 기자가 18차례 이상 트럼프 대통령을 인터뷰하면 쓴 이 책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치명적인 위협을 알면서도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이 담겨 있다.
이 책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한 다음 날 우드워드 기자와 한 통화에서 코로나19에 대해 '독감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나이 든 사람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도 위험하다'고 말한 것으로 적혀있다.
이 대화를 나눈 불과 3일 후에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날이 따뜻해지면 코로나19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대국민 거짓말 논란'으로 확산됐다.
미국은 '공직자의 거짓말'에 매우 엄격하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된 닉슨 대통령도 도청 그 자체보다는 거짓말 때문일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경우다. 우드워드 기자의 책 출간 이후 열린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조나단 칼 ABC기자가 "왜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는가. 그리고 지금 대통령이 하는 말을 믿어야 하는가?"라며 돌직구를 던진 것도 이 때문이다.
두번째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강조하던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된 일이다.
그는 지난 2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자신과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바이든과의 대선후보 토론에서도 '대규모 지지자들을 동원한 유세'를 자랑했던 그가 오히려 이 끔찍한 질병에 걸리면서 유권자들에게 '자신조차 걸리는 정부의 방역대책이 믿을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뉴욕타임즈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확진판정은 그의 선거운동에 어려움을 줄 것"이라며 "특히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축소하려 했던 그의 행보를 볼때 양성판정 만으로도 정치생명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모두의' 대통령에 대한 의구심… 인종차별 논란
'블랙 라이브즈 매터'
지금 미국 사회에서 시민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 중 하나다. 미국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과잉진압으로 촉발된 이 운동은 '더 이상 흑인을 차별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종차별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강한 미국 정치권에서도 '블랙 라이브지 매터'는 단연 화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이슈에 대해서도 연일 헛발질이었다. 그는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벌어진 일부 시위에 대해 '폭동'이라고 비판했고, 또한 이들 뒤에 극좌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정치적 이슈로 몰아가기 위한 전략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상당한 역풍만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바이든 후보와의 대선후보 토론에서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스'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별다른 비판없이 '물러서서 대기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인 우월주의에 저항하는 급진적 인종차별 반대주의자를 일컫는 '안티파'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기반인 백인의 결속을 위해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으로 읽히면서 또다시 거센 역풍을 맞았다.
바이든 후보는 토론이 끝난 뒤 "미국의 대통령이 백인우월주의자를 부인하길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만에 '프라우드 보이스가 물러나야 한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이미 상황은 악화될대로 악화되어 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정인 공화당 출신 전직 정부 관료 56명이 바이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바이든을 위한 전 공화당 국가안보 관리들'이라는 단체 소속으로, 여기에는 트럼프 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차관보를 엘리자베스 노이만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백인우월주의 두둔 논란이 바이든 지지의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이은 헛발질이 자신의 아군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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